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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3.1운동 집대성한다'1919년 3.1운동과 원주' 학술도록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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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0.3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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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년대 원주헌병분대. 현 KBS원주방송국 부근에 있었다.

1919년 3.1운동이 지방으로 확산돼 투쟁의 열기가 들불처럼 번져갈 때 원주는 일제에 의해 집중적인 감시와 견제를 받게 됐다. 그해 3월 초 원주보통학교 생도들이 고종 임금의 장례를 맞아 조의의 상징으로 삼베 천으로 만든 상장(喪章)을 달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또한 원주공립보통학교 4학년이던 김정열이 태극기를 만들고 운동을 일으키려고 계획하다가 발각되는 사건도 있었다.

내년이면 3.1운동 100주년을 맞는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원주의 3.1운동을 집대성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원주시역사박물관에서 기획전시 일환으로 ‘1919년 3.1운동과 원주’란 제목의 학술도록을 제작 중이다. 원주지역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조명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다.

1919년 당시 원주에서는 만세 시위가 쉽지 않았다. 원주를 집중 감시하던 일제가 그해 3월 16일 춘천 79연대 소속 보병 20명을 원주에 증파했기 때문이었다. 4월 초에는 일제 본국에서 병력이 증감돼 원주에 1개 중대 보병을 추가로 파견, 경계를 강화했다.

당시 원주군 원주면 상동리(현 KBS 원주방송국 인근)에 원주헌병분대가 주둔했고, 그 예하에 분견소 1곳, 파견소 5곳, 출장소 7곳 등 원주의 헌병인력은 65명 정도였다. 그럼에도 원주 읍내는 일제에 대한 투쟁의식이 높았다. 1919년 3월 30일 강원도장관이 내무부장관에게 보고한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원주 읍내 시장은 본일(本日) 개시(開市)일인데 3∼4천명의 집합을 예상하며, 형세 불온함으로 인해 경계 중.”이라는 사실에서 확인하듯 만세운동은 폭발 전이었다. 그러나 원주 읍내에서는 일제의 병력 증감 등의 이유로 만세운동 전개가 수월하지 않았다. 만세운동은 원주 읍내가 아닌 주변의 면리(面里)지역에서 거세게 일어났다.

원주시역사박물관에서 발간하는 학술도록에도 부론면, 소초면, 귀래면, 문막읍, 지정면, 흥업면, 호저면 등 당시 면리 지역의 만세운동에 대해 기술한다. 또한 원주 3.1운동 독립유공 인물을 소개한다. 이를 위해 지난 8월부터 독립유공 인물 후손들을 만나 인터뷰 했고, 독립유공 인물 묘소와 유물을 사진으로 담고 있다.

독립유공 인물의 후손은 약 40명을 인터뷰했다. 후손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인터뷰를 위해 후손 1명을 3번 넘게 방문하는 고된 작업을 하고 있다. 또한 국가기록원, 국사편찬위원회, 독립기념관, 국가보훈처 등에서 확보한 독립유공 인물들의 독립운동 판결문도 학술도록에 싣는다.

학술도록을 발간 중인 김성찬 원주역사박물관 학예연구담당은 “고령의 후손이 애국지사의 손주 또는 증손이란 점에서 더 지체되면 기록으로 남기기 어려워 학술도록 편찬을 서두르고 있다”면서 “학술도록 발간뿐만 아니라 전시회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상용 기자  sylee@wonjutoday.co.kr

<제공 = 원주투데이 http://www.wonju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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